비렁길 다 걸었으면, 인자 여그서 하루 자고 가랑께
섬에서 보내는 하룻밤
비렁길을 다 걷고 나면 몸이 먼저 압니다. 절벽을 옆에 끼고 두세 시간을 걸었으니 어깨도 다리도 뻐근하고, 바닷바람에 몸은 이미 소금기로 절어 있기 마련입니다. 그런데도 배 시간표만 확인하고 서둘러 항구로 돌아가는 분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사실 금오도 안에도 몸을 뉘일 곳이 있는데 말이죠. 남면 금오로에 자리한 '금오도보금자리펜션'은 다도해 해상국립공원으로 지정된 이 섬 안에서 펜션과 캠핑장, 카페를 한자리에서 함께 운영하는 곳입니다. 국립공원으로 묶인 섬답게 주변 자연이 손대지 않은 그대로 남아 있어서, 펜션 마당에 서 있는 것만으로도 비렁길에서 봤던 절벽과 숲의 기운이 그대로 이어지는 느낌을 받습니다. 절벽길을 걸으며 섬의 겉모습을 봤다면, 이번엔 하룻밤 묵으면서 섬의 속살까지 느껴보는 겁니다. 비렁길을 걷고 온 발걸음이라면, 배를 타고 서둘러 돌아가기보다 이 섬에서 하루 더 머물러 보는 것도 좋은 선택이 될 것 같습니다.
황토가 지어올린 집
이 펜션이 특별한 건 자리한 땅부터 다릅니다. 약 4,000㎡에 이르는 넓은 대지 위에 펜션동과 캠핑장, 카페가 함께 들어서 있는데, 이 건물은 펜션지기가 설계부터 마무리까지 공사 전 과정에 직접 참여해서 지은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업체에 맡겨 뚝딱 지은 숙소가 아니라, 주인이 직접 벽돌 하나 나사 하나까지 신경 써서 올린 집이라니, 그 자체로 이야깃거리가 됩니다. 넓은 대지 안에 방과 마당, 캠핑 자리가 여유 있게 배치돼 있어서, 옆방이나 옆 텐트와 부대끼지 않고 각자의 시간을 보낼 수 있다는 점도 이런 배경에서 나온 것 같습니다. 손수 지은 집이 다 그렇듯, 구석구석 주인의 손길이 느껴진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것도 이해가 갑니다.
그리고 이 집이 서 있는 땅, 금오도는 돌 없는 순 황토로 이뤄진 섬이라고 합니다. 육지에서 흔히 보는 바위투성이 해안과 달리, 흙 자체가 붉고 부드러운 황토여서 여수 인근 섬들 중에서도 흔치 않은 지질로 꼽힌다고 합니다. 황토라고 하면 흔히 찜질방이나 황토방에서나 만나던 재료인데, 이 섬은 마당이고 길이고 온통 그 황토로 덮여 있는 셈입니다. 황토는 원래 비 온 뒤 은은한 흙내음이 올라오는 것으로 알려진 흙이라, 섬 전체가 이 흙으로 덮여 있다면 그 냄새를 일상적으로 맡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흙과 바다가 함께 있는 섬에서 흙의 기운을 온몸으로 받으며 보내는 하룻밤이라니, 생각만 해도 몸이 조금 가벼워지는 기분입니다.
돌 하나 없이 순 황토로 채워진 섬이라니, 금오도는 밟는 것부터 이미 다릅니다.
— 🦦 수달황토섬이 주는 진짜 기운
바닷가에서 하루 묵어본 분들은 아실 텐데, 아무리 좋은 숙소라도 바다 특유의 비린내가 방 안까지 스며들어 잠자리를 불편하게 만들 때가 있습니다. 창문을 닫아도 어딘가 짠 내가 남아 있는 느낌, 섬 숙소를 다녀본 분이라면 한 번쯤 겪어보셨을 거예요. 그런데 이곳은 순 황토로 이뤄진 땅의 자연스러운 탈취 효과 덕분인지, 바다 비린내가 잘 배지 않는다고 합니다. 습기를 머금었다가도 서서히 내보내는 흙의 성질 때문 아니냐는 이야기도 나오는데, 정확한 원리까지는 알 수 없어도 결과만큼은 반가운 이야기입니다. 섬 안 숙소인데도 바다 냄새 걱정 없이 편히 묵을 수 있다는 건, 직접 겪어보지 않으면 잘 모르는 이 펜션만의 장점입니다.
물 사정도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섬이라고 하면 온수나 수압이 시원치 않을까 지레 걱정하는 분들이 많은데, 이곳은 화장실과 샤워장의 온수가 잘 나오는 편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육지에서처럼 씻고 나면 그만이라는 이야기입니다. 게다가 금오도 자체가 물이 풍부하고 수질이 최상급으로 알려진 섬이라, 씻는 물부터 마시는 물까지 걱정 없이 하룻밤을 보낼 수 있다는 점도 이 펜션을 찾는 이유 중 하나입니다. 섬 여행에서 의외로 크게 다가오는 게 물 사정인데, 비렁길을 걷고 땀과 흙먼지를 뒤집어쓴 채로 도착해도 뜨거운 물로 개운하게 씻어낼 수 있다는 건 몸이 먼저 반가워할 이야기입니다. 그 부분이 든든하다는 건 꽤 큰 안심이 됩니다.
펜션·캠핑장·카페, 골라 묵는 하루
이곳의 또 다른 매력은 한자리에서 여러 방식으로 머물 수 있다는 점입니다. 아늑한 방에서 편히 묵고 싶은 날엔 펜션을, 별을 보며 텐트 안에서 밤을 보내고 싶은 날엔 캠핑장을 고르면 됩니다. 두 곳 모두 같은 대지 안에 있어서, 일행 중 취향이 갈려도 각자 원하는 방식으로 하루를 보내고 다음 날 아침 카페에서 다시 모이는 것도 가능합니다. 가족 여행이라면 아이들은 캠핑장에서 뛰놀게 하고 어른들은 펜션에서 쉬는 식으로 나눠 즐길 수도 있고, 친구들끼리 왔다면 다 같이 캠핑장에 모여 앉아 밤늦도록 이야기를 나누는 것도 이 넓은 대지가 있어 가능한 그림입니다.
카페까지 함께 운영되고 있다는 점도 반갑습니다. 비렁길을 걷고 난 다음 날 아침, 굳이 배를 타고 나가지 않아도 커피 한 잔 손에 들고 섬의 아침 공기를 느낄 수 있으니까요. 걷느라 지친 다리를 카페 테라스에 걸치고 앉아, 어제 걸었던 절벽길을 되새겨보는 시간도 이 펜션이 주는 즐거움 중 하나입니다. 숙소 하나, 캠핑장 하나, 카페 하나를 따로 찾아다니지 않아도 된다는 것만으로도 섬 여행의 피로가 한결 덜어집니다. 배 시간에 맞춰 아침 일찍 서두르지 않고, 카페에서 여유롭게 시간을 보내다 오후 배로 나가는 일정도 충분히 그려볼 수 있습니다.
비렁길 다녀온 뒤, 하루를 이렇게 그려보면
실제로 하루를 그려보면 이렇습니다. 오전에 비렁길을 걷고, 절벽과 숲을 지나 땀과 흙먼지를 뒤집어쓴 채 펜션에 도착합니다. 배 시간에 쫓기지 않아도 되니 서두를 필요가 없습니다. 뜨거운 물로 개운하게 씻어내고 나면 몸이 한결 가벼워지고, 황토 기운이 감도는 마당에 앉아 저녁 바람을 맞으며 하루를 정리합니다. 캠핑장을 택했다면 저녁엔 별을 보며 하루를 마무리하고, 펜션을 택했다면 포근한 방에서 쉬면 됩니다. 다음 날 아침엔 카페에 앉아 커피 한 잔과 함께 어제 걸었던 절벽길을 다시 떠올려 보고, 여유가 남으면 못 다 걸은 비렁길 구간을 마저 걷고 나오는 것도 좋은 그림이 될 것 같습니다.
수달의 팁 · 금오도보금자리펜션은 전남 여수시 남면 금오로 1139에 있습니다. 가격이나 예약 방법은 시기에 따라 달라질 수 있으니, 방문 전 미리 확인하고 움직이시는 걸 추천합니다. 성수기에는 펜션과 캠핑장 모두 자리가 빨리 찰 수 있으니, 비렁길 일정을 잡을 때 숙소도 함께 알아보시면 좋겠습니다.